대통령의 선전포고: "농협 떨고 있니?" (농촌소멸, 스마트팜, 농협정상화)
농업 콘텐츠를 기획하면서 현장을 직접 오가다 보면, 정책 발표와 농촌 현실 사이의 온도 차가 얼마나 큰지 몸으로 느낍니다.
저도 처음엔 '스마트팜이 확산되면 농촌이 살아나겠구나'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농민들을 만나보니,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구조였습니다.
농촌 소멸은 더 이상 특정 지역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고령화, 청년층 유출, 기후위기가 맞물리며 식량 주권 자체를 위협하는 국가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농촌소멸, 숫자로 보면 더 심각합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위기감을 데이터로 확인하면 더 서늘해집니다. 농촌 지역의 고령화율, 즉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이미 40%를 넘는 마을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농가 인구는 약 216만 명으로, 10년 전보다 30% 가까이 줄었습니다(출처: 통계청).
저는 블로그에 볍씨 소독법이나 육묘 관리 같은 농업 기술 콘텐츠를 올리면서, 정작 그 정보를 가장 필요로 하는 분들이 디지털 접근 자체를 어려워한다는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아이가 살아갈 농촌을 그려볼 때면, 이 문제가 남의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농촌 소멸 위기에 대응하는 핵심 정책으로 농어촌 기본소득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농어촌 기본소득이란 농촌 주민이라면 별도의 조건 없이 일정 금액을 정기적으로 지급받는 소득 지원 제도를 의미합니다. 일부에서는 "재원 조달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는데, 저는 시범 사업 결과를 보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실제로 시범 지역에서 지역 내 소비가 늘고 창업이 증가하는 효과가 확인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돼야 새로운 도전도 가능하다는 건 농촌이나 도시나 다를 게 없습니다.
농어촌 기본소득 외에 햇빛소득도 함께 언급됩니다. 햇빛소득이란 농지나 유휴 공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전력 판매 수익을 농민에게 배분하는 방식입니다. 농사만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에너지 생산으로 보완하는 발상인데, 농촌 소득 다변화라는 관점에서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스마트팜, 기술보다 접근성이 문제입니다
스마트팜 이야기가 나오면 저는 항상 현장에서 느꼈던 온도 차를 먼저 떠올립니다. 스마트팜이란 ICT(정보통신기술)와 자동화 설비를 농업에 접목해 온도, 습도, 일조량 등을 원격으로 제어하며 생산성을 높이는 농업 방식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정책 자금이 늘어난다고 해서 현장 접근성이 자동으로 높아지는 건 아니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스마트팜 도입 농가의 경영 성과는 일반 농가 대비 생산성이 평균 27% 이상 향상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출처: 농림축산식품부). 숫자만 보면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제가 직접 들어본 현장 목소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초기 설비 투자 비용이 수천만 원에서 억 단위로, 정책금융 지원을 받더라도 자기 부담금이 부담스럽다
- 스마트팜 운영에 필요한 데이터 분석이나 원격 제어 기술을 익히는 데 시간과 교육이 필요한데, 지원 체계가 부족하다
- 농협을 통한 행정 절차가 복잡해 신청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정책 설계가 아무리 좋아도, 실제 이용자가 접근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AI와 로봇을 활용한 스마트팜 확산을 위해 정책금융을 확대하겠다는 방향은 맞습니다. 다만 문턱을 낮추는 섬세한 설계가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세 농민이나 귀농 청년들이 복잡한 서류 없이 접근할 수 있는 패스트트랙(fast-track), 즉 우선 심사 경로 같은 제도적 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뜻입니다.
농산물 유통 구조 개선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생산자가 정당한 땀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복잡한 유통 단계입니다. 소비자는 비싸게 사는데 농민은 싸게 파는 이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스마트팜이 확산되더라도 농가 소득 문제는 반복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농협 정상화, 구조 개혁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농협 이야기는 제가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주제이기도 합니다. "농협이 우리 편이어야 하는데, 가끔은 그 반대처럼 느껴진다"는 말을 한두 번 들은 게 아닙니다.
농협의 지배 구조 문제는 오래된 과제입니다. 지배 구조란 조직 내에서 의사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그 결과에 대해 누가 책임지는지를 규정하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농협처럼 수백만 조합원이 주인인 협동조합에서 지배 구조가 불투명하면, 정작 주인인 농민의 목소리가 경영에 반영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생깁니다.
이에 대해 "지배 구조 개선보다는 당장의 농가 지원이 더 급하다"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두 가지가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농협이 농민의 신뢰를 잃으면 정책 자금이 농민에게 제대로 흘러가지 못하고, 결국 농가 지원 효과도 반감될 수밖에 없습니다.
조합원 직선제는 이 맥락에서 의미 있는 제도 개선입니다. 조합원 직선제란 조합원들이 직접 투표를 통해 농협 임원을 선출하는 방식으로, 대의원회 등 간접 경로를 거치지 않고 조합원의 의사가 경영에 직결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이게 단순한 절차 변경이 아니라, 농협을 실질적으로 농민의 조직으로 되돌리는 핵심 열쇠입니다. 당장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아닐 수 있지만, 구조가 바뀌어야 서비스도 바뀝니다.
농업의 기술적 혁신과 제도적 투명성은 결국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농민이 주인이 되는 농촌입니다. 저는 현장을 들여다보면서, 그 당연한 목표가 아직도 많은 분들에게 요원하게 느껴진다는 현실을 자주 마주쳤습니다. 농어촌 기본소득 확대, 스마트팜 접근성 개선, 농협의 민주적 통제 강화,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맞물려 돌아갈 때 농촌 대전환은 구호가 아닌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자랄 농촌이 소멸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현장의 이야기를 계속 담아보겠습니다.